요즘은 특수한 몇 국가를 제외하면 박해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런 착각은 매를 맞고, 감옥에 투옥되고, 사자 굴에 던져지는 극적인 것만을 박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오늘날도 박해가 있습니다. 우리가 의식하지 못할 뿐입니다. 우리가 알고 있는 1세기 교인들이 받았던 극적인 박해는 사실 간헐적이었습니다. 일상적인 경제적 박해가 더 컸습니다. 지금 시대로 말하자면 예수를 믿었기 때문에 사업 거래처가 끊기고, 조합에서 쫓겨나고, 사회 생활에서 왕따를 당하며 살아야 했습니다.

오늘날의 박해는 주로 문화적입니다. 진화론의 허점을 지적하면 무지한 사람으로 비웃음을 삽니다. 동성간의 결합은 결혼이 아니라고 하면 성소수자를 억압한다고 비난 받습니다. 산모의 편리만을 위한 낙태는 안 된다고 말하면 여성의 권리를 탄압한다고 매도 당합니다. 신체적인 고통보다 비난 받고, 비웃음 당하고, 왕따 당하는 것이 더 고통스러울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많은 크리스천들이 박해 앞에서 복음을 등지고 믿음을 저버립니다. 그러면서도 자신은 박해 때문에 믿음을 버렸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이 시대를 살아가며 말씀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더 어려운 시대가 되었습니다. 신앙을 문화로 이해하는 시대에 살고 있는 우리들이 경각심을 가지고 살아야 하는 때가 되었습니다. 더군다나 우리의 자녀들에게 믿음의 유산을 전해야 하는 책임을 가진 우리는 더욱 깨어 있어야 합니다. 베드로의 경고는 1세기나 21세기나 유효합니다. “정신을 차리고, 깨어 있으십시오. 여러분의 원수 악마가, 우는 사자 같이 삼킬 자를 찾아 두루 다닙니다(베드로전서 5:8).”

Category목회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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